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발데마르 페겔라인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독일 안스바흐에서 승마학교를 운영하던 아버지 한스 페겔라인의 차남으로 태어난 발데마르 페겔라인은 대학에서 수의학을 공부하다가 1933년 6월부터 1935년 8월까지 돌격대에 참가했다. 1935년 9월에 친위대에 입대한 그는 1936년 10월부터 형인 [[헤르만 페겔라인]]이 교장으로 일한 뮌헨의 친위대 승마학교에서 근무했다. 두 형제는 모두 승마로 명성이 높았기에 승마뱃지 금장을 타기도 했다. 1939년에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할 당시 친위대 대위였던 발데마르는 형인 헤르만이 지휘하던 제1 토텐코프 기병연대에서 종군했다. 1941년 6월부터 시작된 [[독소전쟁]]에도 종군하여 1941년 7월에 1급 철십자 훈장, 1941년 10월엔 일반 돌격훈장을 받았다. 1941년 12월에 친위대 작전본부로 이동한 발데마르는 1942년 4월에 6부(기마 및 수송차량) 부장으로 취임했다. 1942년 4월 20일에 예비역 친위대 소령으로 승진한 그는 1943년 6월 초에 전장으로 복귀하여 제8 SS기병사단 <플로리안 가이어>예하의 제2 SS기병사단의 대대장이 되었다. 1943년 12월에 기사 철십자 훈장을 수상한 발데마르는 1944년 1월 30일에 예비역 친위대 중령으로 승진했다. 1944년 4월에 친위대 작전본부 제6부로 돌아온 발데마르는 12월에 친위대 대령으로 진급한 후 1945년 2월 후반에 새로 편성된 제37 SS의용기병사단의 사단장이 되었지만 1945년 3월에 교체된 후 패전시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. 별다른 전범 행위가 입증되지 않아 곧 석방된 후, 이름을 악셀 페겔라인으로 바꾸고 베를린에서 살다가 2000년에 사망했다. 1990년에 향년 66세로 먼저 죽은 아내 아넬리제와 합장되었다. 형 헤르만은 슬하에 딸만 한 명을 두었으나 남자친구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실의에 빠져 향년 16세로 자살했으며, 발데마르도 자녀 없이 사망해서 페겔라인 가족의 가계는 완전히 단절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